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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중이던 공장이 무너지면 어떻게 해야 할까?

2011년 말 신축공장이 무너지고 나서 일련의 경험들을 말하려고 한다.

신축중이던 공장이 붕괴되었다.

바야흐로 2011년 말(사실은 아직도 정확한 날짜와 시간까지 기억한다. 😅), 입사한지 1년도 되지 않았을 때였다.
아침에 출근을 했는데, 선배들과 팀장님이 한참이 지나도 출근을 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나?’ 싶었는데, 알고보니 새벽에 신축공장 현장이 붕괴되어서 전부 현장에 가 있었던 것이었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면 알겠지만, 이런 정도의 큰 사고가 일어나면 여기저기 별 상관도 없는 사람이 ‘입을 대려고’ 현장으로 몰려든다.
왜냐? 회사의 오너도 오기 때문이다.
마치, 사고 한번 터지면 대대, 연대, 여단, 사단, 육군본부 등등에서 상황파악 한답시고 너도나도 전화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렇게 C레벨이 너도나도 이러쿵 저러쿵, 몇 날 며칠동안 붕괴된 공장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설왕설래’가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만 오갔을 뿐 정작 해결, 실행하는 사람은 없었다.
내가 그리 좋아하는 단어는 아니지만 흔히 ‘마도구찌’가 없었던 것이다.

이 때까지만 해도 나는 이 일과 전혀 무관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사원’ 나부랭이에게 이런 상황을 해결(?)하라고 할 회사가 지금도 있진 않을거다.
하지만 내가 이 글을 쓴다는 건 내가 경험했기 때문이다. 😂
요즘은 AI가 워낙 발달해서 이런 상황에서도 체계적으로 상황 정리와 대응방안까지 가이드를 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흔치 않은 경험이다 보니 생각이 나서 정리해보기로 했다.

MiniMax Image로 만든 가상의 공장 붕괴 이미지

사고 직후

붕괴 사고에 회사 관계자를 비롯해 경찰, 소방, 언론, 보험사 등 엄청나게 많은 인파가 몰려든다.
사람들에게는 불구경이나 마찬가지 이기 때문에 당분간은 궁금해 할 수 밖에 없다.

  • 사고현장 통제가 우선이다.
    • 2차 붕괴가 없으리란 법이 없다. 그래서 우선 사고 현장은 통제구역으로 잡고 ‘관계자 외 출입금지’ 라인을 만들어야 한다.
      건설현장이기도 하고 공장을 지을 정도의 회사면 ‘건설팀’이나 ‘공무팀’이 있을 것이기에 출입통제 구역을 설정하도록 하고, 향후에는 펜스를 쳐서 공사현장처럼 만들어야 한다.
    • 이 때, 다른 공장으로 출입하거나 외부인의 출입으로 인한 보안상의 이슈와 2차 붕괴 등의 잠재된 위협을 감지하기 위해서 사고 현장 주변을 비추는 CCTV를 설치해서 모니터링 해야 한다.
      ‘보안팀’이 있다면 보안 관련 업무를 위임하면 될 것이다.
  • ‘비상대책반’과 같은 별도의 TF 구성이 필요하다.
    • 현장 인파가 어느 정도 정리되고 나면 ‘비상대책반’과 같은 내/외부를 연결하는 별도 TF가 구성되어야 한다.
      TF는 소방, 경찰, 지자체 및 정부 관계자, 언론사 등을 대응하는 채널의 역할과 현재의 상황과 현장에서 발생하는 이슈에 대해서 내부 C레벨 또는 유관부서와 공유하는 게 초기 주요 역할이다.
      사실 나는 이 때, 평일 저녁, 야간, 주말을 다 포함해서 24시간 3교대로 근무를 섰다.
      마치 불침번이나 당직 같은 느낌으로 두 달 이상을 보냈다.
  • 현장이 어느정도 통제되고 나면 다음과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
    • 극박한 느낌의 24시간 혹은 48시간 정도가 지나면 추가 붕괴 위험은 없다는 게 어느 정도 판단이 되고, 대피했던 공장 근로자들은 다시 출근을 하게 된다.
      다만, 이런 상황에서 총무로 근무하면서 느끼는 당황스러움은 이런 것들이다.
      • 신축공장이 붕괴되었는데, 기존 공장 근무자들은 대피를 시켜야 하나, 퇴근을 시켜야 하나
      • 만약, 퇴근이라면 공장 가동을 중단하고 퇴근하라고 의사결정을 누가 내릴 수 있나, 대표이사 혹은 오너에게 보고해야 한다면 누가 보고할 것인가
      • 내일은 출근을 시켜야 하나
      • 공장 가동 중단으로 생산하던 물량 납품지연으로 피해를 보는 이해관계자들게는 누가 이 사실을 알리고, 대응할 것인가
      • 이 이후에 정상화는 누가 책임지고 이끌어갈 것인가
    • 안타깝게도 결국 회사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들은 이게 ‘누군가의 잘못이냐’를 따지려 들고 ‘해결’ 중심보다는 ‘원인’을 찾는데 혈안이 되어서 이 위기상황을 모면 하고 한다. 한마디로 “저는 몰라요. 쟤가 그랬어요“의 스탠스다.
      왜냐하면 맡아봤자, 빛이 나지 않는 일이다. 자칫 제 명을 단축하는 일일 확률이 훨씬 높다.

진흙탕 싸움의 시작

현직에 있는 사람들은 공장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들은 순간 대부분 느낌이 온다.
‘아, 이거 소송해야 되겠구나’, 그렇다.
이렇게 공장이 무너진 경우 시공사, 감리와 진흑탕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
회사 대 회사 인 상황에서 “아이고 죄송합니다. 저희 잘못입니다. 원하시는 대로 모두 보상해드리겠습니다.” 라고 할 리가 없지 않은가? “원인은 모르겠고, 저희 잘못은 없습니다.“가 기본적인 스탠스인다.
그러다 “그럼 원칙대로 하시죠!“가 결국은 소송이다.

  • 공장이 무너진 경우에는 ‘지반’이 원인인지 아닌지가 중요하다. 즉, ‘자연재해’이냐 ‘인재’냐를 가리는 포인트가 된다.
    • 당시 회사에서는 사단법인 한국지반공학회에 붕괴 원인 조사를 요청했고, 상대측인 시공사 + 감리는 대한토목협회에 동일한 요청을 했다.
    • 예상했겠지만, 의뢰자의 Needs(?)에 근접한 용역 결과물이 나오게 된다. 법적 공방을 위해서는 양 당사자의 주장을 뒷받침할 객관적인 근거가 있어야 하니 당연한 수순이다. 붕괴원인은 그렇다 치고 그럼 공장 붕괴로 인한 피해금액은 도대체 얼마인가? 얼마를 배상해달라고 소송을 하는 것일까?
      이 부분이 가장 내가 많은 시간을 투입했던 항목이고, 전역한 이후로 ‘사회생활’이 ‘군대’보다 더 나은 게 아니라, 마치 전역일이 없는 ‘군대’ 같다는 생각을 하게 했던 대목이다.

소송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모두가 인지하고 있었고, TF에서 수차례 회의를 했다.
결국은 R&R을 싸움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는데, ‘피해액을 누가 정리할 것이냐‘가 가장 중요한 결정사항 이었다.
앞에서 이야기 했지만 이런 일은 ‘독이 든 성배’라는 표현이 정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만(?) 하기 좋아했던 당시 팀장은 원하지 않았겠지만 아는 척 하다 일을 받아온다.
그렇게 각 팀에서 나름의 피해액이라고 불리는 자료들이 수십장씩 날아오게 된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흘러 A4 박스를 다 채우고 한참을 넘는 자료들이 팀장 책상에 쌓이게 됐다.

그러다 12월 23일 금요일 오후 7시 쯤 퇴근하려고 인사하던 나에게 한마디 한다.
“야, 나 이거 정리 못하겠다. 어이쿠, 이거 니가 좀 해봐라. 월요일 아침에 볼 수 있겠지?” 그렇게 나의 주말, 연말/연시가 모두 날아갔다.
더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당시 입사 1년 남짓된 사원에게 이런 일을 시킨다는 건 나에게 기회를 준다는 것 보다는 꼬리 자르기의 느낌이었다.
사원이 못하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니까.
한편으로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이후로 일이 더 많아져서 힘들긴 했지만 어떤 부장이 나한테 그랬다.
"○○아, 너는 좋겠다. 이거 소송 끝나려면 최소 3년은 회사 더 다닐 수 있겠다."

  • 당시의 나는 피해액 산정을 위해 ‘직접적 피해’와 ‘간접적 피해’를 큰 틀에서 구분하기로 했다.
    • ‘직접적 피해’는 말 그대로 공장이 붕괴되면서 토사에 유실된 원재료라든지, 사용하지 못하게 된 가구, 시설, 장비 등과 같은 것들을 말한다.
    • ‘간접적 피해’는 예를 들어 공장이 붕괴되면서 정전이 되었는데, 이 정전으로 인해 냉장, 냉동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 제품을 폐기해야 했다든지, 단수로 인해 설비가 오작동을 일으켜 수리비가 나왔다든지 하는 것들이다.
    • 어떤 부서에서는 본인의 사용하던 PC가 붕괴로 인해 토사에 묻혔는데, 그 안에 기존의 업무 히스토리와 각종 정보가 있다며 해당 정보에 대해서도 피해보상을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예상하겠지만 법원에서는 ‘피해액’으로 인정 받지 못했다.
      객관적인 인과관계에 의해서 발생한 피해액에 대해서 소송가액이 정해지는 것이며, 이 마저도 시간이 지나면 조정/합의를 거쳐 피해액이 아니라 합의금 느낌으로 변질된다.
  • 한 권의 책으로 소송자료를 만들었다.
    • 당시 A4 1,500여장의 자료를 정리해야 했었는데, 전부 스캔하거나 PDF로 변환하 ‘직접적 피해’와 ‘간접적 피해’로 구분하고 각 항목별 목차를 만들어 간지를 끼워넣는 방식으로 한 권의 책 형태로 소송자료를 만들었다.
    • 사실 PDF를 편집하고 변환하는 것은 지금에 와서야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당시에는 회사에서 라이선스의 제약을 받지 않으면서 ‘무료’로 사용가능한 Tool이 거의 없다시피 해서 꽤나 애를 먹었었던 기억이 있다.
      한편으로는 PDF로 정리하는 걸 보고 당시 팀장은 ‘신선한 충격’을 먹은 표정이기도 했다.
    • 지금이라면 OCR을 하든 AI를 나눠서 시켰으면 훨씬 더 잘 정리했을지도 모르겠다.
  • 이와 같은 붕괴 사고 이면에는 ‘보험사’가 있다.
    • 사실, 사고 직후 가장 빨리 달려온 사람 중 한명이 당시 보험사의 담당자였다.
      대부분의 제조업을 영위하는 회사들이 ‘재산종합보험’을 가입하고 있을테고, 당시 내가 다니던 회사에서는 부보가액을 103%로 설정했었다.
      즉, 100억 짜리 공장이면 103억을 보상한도로 받을 수 있게 설정해놨었는데, 500억 수준의 공장이었기 때문에 보험사 입장에서도 쉽지 않은 금액이었으리라 생각이 든다.
    • 어찌저찌 소송을 통해 ‘인재’로 판명이 되어 시공사로부터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되었지만 소송이 치뤄지는 기간 동안에 하루빨리 소송이 끝나길 가장 바라던 사이 보험사 담당자였다.

승소

공장이 붕괴되고 3년 6개월이 넘는 지리멸렬한 소송전 끝에 승소 판결이 났다.
어느 부장이 했던 말처럼 나는 승소할 때까지도 회사를 다니게 됐다.
늘 느끼지만, 굳이 인생에서 겪지 않아도(?) 될 일들을 참 많이 겪어본 것 같다.
누가 알았겠는가? 내 이력서에 공장 붕괴 사고 대응 및 승소 이런 내용이 한 줄 들어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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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수정: 2026년 3월 23일 월요일